말레이시아 페낭에서의 다문화 여행

인력거는 해풍이 잔잔하게 풀어오는 선착가를 따라 달렸다. 싱가포르의 대규모 오페라 하우스인 에스플러네이드(the Esplanade)와 이제는 건물 벽 외관이 바스러지고 있는 식민지 시절 행정부 건물들 쪽으로 향했다.

말레이시아는 다문화의 나라다. 그 중에서도 말레이시아 반도의 서해안에 위치한 페낭 (Penang)섬은 가장 생동감 넘치는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페낭 주(州)의 주도인 조지타운(Georgetown)은 18세기 후반, 식민지화의 기수였던 영국과 유럽 패권국가들이 동남아시아에서의 세력 확장을 위한 말레이 반도 점령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동양의 진주’이자 국제해상무역의 주요 수출입항이었던 조지타운은 선진화된 경제적 요충지로 발전했다. 번화한 이 도시에서 빅토리아 여왕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시계탑, 콘월리스 항구 (Fort Cornwallis) 그리고 몇몇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영국 패권의 흔적들일 뿐이다.

콘월리스 항구는 페낭에 얼마 남지 않은 영국 식민 지배의 흔적이다 (사진: 짐 체니).

루드야드 키플링 (Rudyard Kipling)과 서머셋 모옴(Somerset Maugham)이 오늘날 페낭의 이토록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봤다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상상하니 즐거워졌다 (루드야드 키플링과 서머셋 모옴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작가이다. 이 글의 저자는 페낭에 남아 있는 영국 식민지배의 흔적과 오늘날의 화려한 도시 풍경을 동시에 감상하며 영국 식민지 시절에 활동했던 두 예술가를 떠올린 것이다—역자).

인력거는 츄씨마을 (‘츄’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수상가옥을 짓고 모여 사는 마을. ‘추’ 혹은 ‘치우’ 라고 발음될 수도 있으나 원문에 따라 그대로 발음했다—역자) 앞에 멈춰섰다. 인력거에서 내려 좁은 다리들과 건널판들을 포개만든 간이 다리들을 건넜다. 짚으로 이어 만든 지붕들로 가득한 베니스의 허름한 구역같았다.

츄씨마을은 19세기 여행자들에게 꽤나 익숙했을 곳이다. 몇몇 중국 씨족이 바다를 건너 페낭에  정착한지 130년이 흘렀다 (말레이시아 페낭에 정착한 5대 중국 성씨가 있는데 ‘츄’씨가 그 중 하나다—역자).  자신들의 고향인 중국의 마을 혹은 주(州)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이 곳 말레이시아의 멜팅팟 (Melting pot,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가 뒤섞여있는 곳—역자)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부두를 따라 늘어선 나무판잣집들의 행렬은 낚시 배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끝이 난다. 이 곳의 어부들은 태국 해안가에서부터 멀게는 미얀마까지 나가 일한다.

페낭의 수상가옥들 (사진: 나타샤 본 겔던).

츄씨 마을의 끝에는 반얀 나무의 몸통과 뿌리로 만든 씨족 사원이 하나 있다. 작은 출입구가 여러개 잇는데, 각각의 출입구 안에는 황금 사당이 있다. 나무를 조각한 후 도금하고 화려한 색깔을 입힌 것이다.

인력거꾼은 조용한 뒷골목 방향으로 페달을 밟았다. 인력거는 어느 건물의 뜰로 들어섰다.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각된 황금빛 건물이 보였다.

페낭에 정착한 중국인 씨족들은 저마다 ‘씨족회관’이라는 것을 세웠다. 주택이나 사원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마을회관으로, 중국 신년(新年, 설)과 같은 명절 혹은 특별한 씨족 행사를 위한 공간이다.

도착한 곳은 콩씨(氏)들의 (‘공’씨 라고도 할 수 있으나, 원문 그대로 발음했다—역자) 씨족회관이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용 모양 기둥과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사자상이 눈에 띄었다.  회관 안에는 조상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반짝이는 명판(名板, 일종의 비석같은 것으로 사람 혹은 사건을 기려 이름과 날짜를 적어 벽에 붙여 놓은 것역자) 들이 걸려 있었다.

페낭에 위치한 콩씨 씨족회관 (사진: 나타샤 본 겔던).

떠나간 조상을 기리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학위를 취득했다든지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을 했을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명판을 제작해 걸기도 한다.

특히 학위 취득을 기념하여 사진을 덧붙여 제작된 작은 명패들은 수없이 많다. 최근에 대학 졸업자가 증가한 것도 한 몫 했겠지만, 효(孝)와 학(學)의 가치는 어디에서나 강조되는 모양이다.

조지타운의 “특별한 문화적, 건축학적 양식”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이로써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빌딩 숲 가운데서 존립을 위협받던 조지타운의 전통 건축물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됐다.

페낭 섬의 인종은 중국인 45%, 말레이인 44%, 인도인 10%로 구성되어 있다. 수 세기에 걸쳐 수만 명의 동남아 이주노동자들도 유입됐다.

거리에서는 북경어, 말레이어, 타밀어, 영어 그리고 페낭호키엔 (다른 말로 ‘중국-말레이 크레올’이라고 한다. 말레이시아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쓰는 말로, 모체는 서인도제도에 사는 유럽인과 흑인의 혼혈인들이 쓰는 영어이다. 말레이시아의 복잡안 인종과 언어 구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역자)을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의 종교생활도 언어만큼이나 다양해서, 중국식 사원 뿐만 아니라 이슬람 모스크와 힌두사원도 볼 수 있다.

이 모든 다양성은 페낭의 음식 문화에 그대로 반영된다. 특히, 중국식 뇨나요리 (‘뇨냐’ 는 Nyonya혹은 Nonya라고 표기한다. 따라서 ‘논야’라고도 발음할 수 있다. 본래 뇨나 혹은 논야는 이주한 중국인과 토착 말레이계 여성이 결혼해 생겨난 인종에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태국, 인도 등의 인종이 섞인 ‘페라나칸(Peranakan)’인종의 여자를 지칭한다. 남자는 ‘바바(Baba)’라고 한다. 따라서, 뇨나요리를 바바뇨나요리라고도 부른다—역자). 섬세한 맛과 화려한 풍미를 자랑하는 인도 음식이 일품이다.

뉴레인 거리(각종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는 시장—역자)의 행상 좌판대들 한 가운데서 플라스틱 탁자에 걸터앉아 싱싱한 해산물, 매운 국수 그리고 차시우 (Char siew, 밥과 함께 먹는 일종의 돼지고기 슬라이스로, 비계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역자)를 후루룩 비워냈다. 길거리 음식을 맛보기에는 세계 최고라는 페낭의 명성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 날, 타 사 피아 비스켓 (영어로는 Tau sar pneah 혹은 Tau sar piah라고 표기하는데, 바로 녹두(綠豆)다. 즉, 녹두로 만든 비스켓으로 모양은 한국의 찰깨빵 혹은 밤빵과 비슷하다—역자)를 야금야금 먹으며 버스를 탔다. 13.5 킬로미터의 다리를 지나 에어 이탐 (Air Itam) 주변의 경사 언덕으로 들어섰다. 에어 이탐이라는 마을은 말레이시아 다문화를 반영하는 또 다른 지역이다.

에어 이탐의 극락사(極樂寺)는 (현지 발음으로는 ‘켁록시 (Kek Lok Si)’ 라고 한다—역자)는 동남아시아 최대 불교 사원으로 이 곳의 거대한 탑들은 마하야나(대승) 불교와 중국의 전통 문화 및 의례가 한 데 뒤섞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1890년에 지어진 극락사는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된 탓에 기념품 점과 행상인들로 북적이지만, 신성한 기도를 위한 사원의 기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전통 및 역사의 보존과 상업성 문화의 공존은 페낭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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