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붉은 도시, 말라카에서의 하루

쿠알라룸푸르에서 타고 온 고급리무진에서 내린 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말라카(Malacca)의 독특한 색감이었다. 도로 위에 서서 그대로 한 바퀴를 돌아봤다. 빌딩, 출입문, 보도, 광고판…부근의 모든 것들이 붉은 색이었다. 두 눈을 의심했다.

어린 소녀가 꿈 꿀 법한 이런 곳에 와 본 적이 있었던가? 이 경이로운 광경에 압도당해 이 진기한 도시의 다른 특색들을 탐색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와 현란한 장식으로 뒤덮인 삼륜 자전거들이 버스 정류장 앞에 줄지어 서서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모는 일꾼들은 호텔이건 게스트하우스건 자전거를 타고 가라며  관광객들을 설득했다. 일꾼들은 나에게도 물었다. 방금 도착한 나는 천천히 걸으며 도시를 느끼고 싶었다. 삼륜 자전거는 나중에 타기로 했다.

말라카 방문객들을 기다리는 화려한 삼륜 자전거 (사진: 니샤 자).

자전거 일꾼들 뒤 편에 서 있는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붉은 산호색으로 칠해진 단순하지만 세련된 양식의 교회였다. 네덜란드인들이 포르투갈인들로부터 말라카를 빼앗은 후, 1753년에 지은 예수교회(Christ Church)다.

성 바울 교회(St. Paul Church)의 옛 터가 남아 있다는 언덕에 올랐다. 언덕 꼭대기에 건물 외관만이 자리해있다. 예수교회와 마찬가지로, 성 바울 교회 역시 식민지 지배 하에서 몇 번의 개보수를 거친 말라카의 아름다운 문화 유적들 중 하나다.

말라카의 명소들 이곳 저곳을 삼륜 자전거 혹은 도보로 둘러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분 좋은 미풍과 맑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솜털 구름들… 걸어 다니기에 완벽한 날씨였다. 나는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작은 도시의 정수(精髓)를 있는 그대로 만끽하고자 했다. 근래에 지어진 쇼핑 몰들과 높은 빌딩들도 눈에 띄었지만, 오래된 도시에 약간의 덧칠을 한 듯 보였을 뿐이었다.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이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 전체에 스며들어 있었다.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자랑하는 말라카는 쿠알라룸푸르 남서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문화적으로 중국인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들의 흔적도 분명하게 눈에 띈다.

말라카의 건물들은 거의 붉은 색이다 (사진: 니샤 자).

‘믈라카(Melaka)’라고도 알려져있는 말라카는 박물관 도시라고 불릴만큼 그 숫자가 많다. 그 중에서도 바바뇨냐 (Baba Nyonya, 중국인과 말레이인의 혼혈을 지칭하는 말로, Baba(바바)는 남자,  Nyonya(뇨냐)는 여자를 뜻한다. 바바뇨냐 인종은 페라나칸(Peranakan)이라도고 불린다. 이들은 중국과 말레이 혼혈에서 기원했으나 점차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영국인, 인도인들 등과도 섞이게 되었다 —역자) 유적 박물관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박물관은 중국 출신의 부유한 상인들이 어떻게 말레이시아에 와서 정착했는지 보여준다. 최초로 말레이시아에 당도한 중국인 상인이 현지 여성과 결혼을 했고 그들은 현재 이 박물관의 이름인 바바뇨냐 가문의 시초가 되었다. 서로 맞닿아 있는 세 개의 복층 건물들로 구성된 이 박물관은 바바뇨냐 사람들의 문화, 생활양식, 복식, 식기, 방 구조, 그리고 각종 일화 등을 보관 및 전시함으로써 수 세대에 걸친 그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시원한 음료 한 잔을 들이킨 후, 아파모사(A’Famosa)라고도 알려진 포르타 드 산티아고(Porta de Santiago)로 향했다. 16세기에 포르투갈 양식으로 지어진 요새로 지금은 허물어져가는 입구만이 남아있지만, 가장 많이 사진 촬영되는 관광명소다. 내가 도착했을 때도 아파모사는 연신 셔터를 눌러대느라 여념없는 관광객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파모사를 보지 않고는 말라카에 와 봤다고 할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아파모사는 아시아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유럽식 건축물 중 하나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아파모사에 들를 뿐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이 곳이야말로 말라카의 가장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돌로 지어진 아파모사는 한 때 도시 전체를 둘러싼 거대한 요새였던 것이다. 포르투갈인들이 1511년에 말라카를 점령했을 때, 이에 반대하는 토착민에 맞서기 위해 아파모사 요새를 건설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1500명의 노예들이 동원됐다. 아파모사는 오늘날 아시아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유럽식 건축물들 중의 하나다.

종커(Jonker)거리로 이어진 다리를 건널 때 쯤 저녁이 됐다. 해가 지고 바람이 선선해졌다. 말라카에 가면 반드시 종커 거리에 가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음식, 놀거리, 기념품,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골동 공예품들 뿐만 아니라 유명한 청운정(영어 표기Cheng Hoon Teng, 한문 표기 靑雲亭, 현지 발음 청훈텅—역자)사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말라카 차이나타운의 중심부에 위치한 청운정 사원은 오랜 세월에도 잠식당하지 않은 역사적인 기념물이다. 1645년에 건립되어 현재까지도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중국식 절이다. 방문객들은 초와 향에 불을 붙이고 기도를 한다. 기도를 마친 후, 타오르는 향은 모래와 재로 채워진 항아리에 꺼 넣는다. 청원정 입구 쪽에서 내 키보다 큰 길이의 향 하나를 발견했다!

말라카에는 청원정 말고도 힌두교 사원을 비롯 다른 사원들이 있다. 모든 사원들을 둘러보고 싶다면 약 이틀의 시간이 필요하다.

저녁 식사 후 말라카 강을 따라 산책을 했다. 선선한 공기가 내 뺨을 어루만졌다. 어느새 밤이 깊었다. 산책로의 고요함 역시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나는 말라카에 단 하루 머물렀을 뿐이다.  보다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말라카를 찾는다면 이 곳에서 보고 즐길 것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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